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디 라마르 (문단 편집) == 사생활 == 6번 결혼했다. *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마리아 "프리츠" 만들(Friedrich Alexander Maria "Fritz" Mandl) (1933~1937): 유태계 무기상이었지만 오스트리아인으로서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세뇌돼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독선적인 성격으로 러마의 배우 활동을 크게 반대했으나 과학자로서의 삶에는 도움을 주었다. 결혼 생활 중에 러마는 만들의 절친인 에른스트 뤼디거 슈타르헴베르크[* Ernst Rüdiger Starhemberg. 1899 - 1956.] 왕자와 바람피우기도 했다. 연합군을 지지했던 러마는 자신과 닮은 하녀를 고용한 뒤 어느 날 그 하녀인 척 하고 하인들 전용 문을 통해 빠져나와[* 자서전에 나와있는 내용이며, 아들 앤서니 로더는 자신도 이렇게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에서 '허풍선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러마는 이 일화를 수차례 전혀 다른 버전으로 말했다.] 프랑스로 도주하였다. 러마는 영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하여 이혼에 성공하게 된다. 한편, 러마는 만들이 자신을 집에 거의 감금하다시피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하녀와 공모해 도망을 쳤다는 러마의 얘기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 전기작가는[* 리처드 로즈의 "[[https://www.amazon.com/Hedys-Folly-Breakthrough-Inventions-Beautiful/dp/0307742954|Hedy’s Folly]]".] 러마가 만들의 곁에서 엿보거나 엿들으며 이해하고 수집해온 극비 기술들을 외부로 유출시키겠다고 협박해 결혼생활에서 빠져나왔다고 적고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mfm.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100346_500.jpg|width=100%]]}}}|| ||<#fff> 프리츠 만들 ||<#fff> 에른스트 뤼디거 슈타르헴베르크 왕자 || * 유진 윌퍼드 "진" 마키(Eugene Willford "Gene" Markey) (1939~1941): 미국의 극작가 겸 제작자. 러마가 미국으로 망명한 후 두 번째로 결혼한 남편. 특허를 낼 때도 러마는 자신의 이름를 '헤디 키슬러 마키'로 등록했다. 그와의 슬하에 제임스 러마 마키라는 자녀를 입양했다. 러마는 이혼 소송에서 3년 간의 결혼 생활 중 실제로 같이 지낸 날짜는 불과 4일이었다고 진술했으며 판사는 이후 결혼할 시엔 장래 남편과 최소 3주 이상을 동거할 것이며 그 사실을 진 마키에게 통보할 것을 권고하였다. (1940)을 찍을 때 유부남 [[스펜서 트레이시]]와 불륜 관계였다. 이때 이미 러마는 세 번째 남편이 되는 존 로더와도 불륜 중이었다. * 존 로더(John Loder) (1943~1947): 미국의 영화배우. 러마와의 사이에서 앤서니 로더와 더니스 로더라는 자녀를 두었으며, 양아들 제임스 마키를 재입적하여 제임스 러마 로더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아래 서술돼있듯이 제임스는 실은 양아들이 아니라 친아들이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umblr_oi9uomtAx21vtr6nbo1_1280.jpg|width=100%]]}}} || * 언스트 하인리히 "테디" 슈타우퍼(Ernst Heinrich "Teddy" Stauffer) (1951~1952): 스위스의 악단 지휘자 겸 사업가로 나이트클럽과 식당을 운영했다. * W. 하워드 리(W. Howard Lee) (1953~1960): [[텍사스]] 석유재벌. 러마와 가장 오래 결혼생활을 유지했지만 [[진 티어니]]와 불륜하면서 러마와 이혼했다. 이혼 후 바로 [[진 티어니]]과 재혼해 역시 긴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러마는 이혼할 때 법정에 자신의 대역을 보내 사람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 루이스 J. 보이스(Lewis J. Boies) (1963~1965): 미국의 변호사. 6살 연하였으며 러마의 이혼 소송을 담당하다가 결혼하였다. 둘의 이혼 때 증인으로 섰던 아들 앤서니 로더는 보이스가 러마의 돈 500,000 달러를 유용하고 야구방망이로 위협했다고 증언했다. 아들 앤서니 로더는 어머니를 닮은 덕인지 캘리포니아의 [[휴대전화]] 회사에 근무했었다. 그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사업을 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